볼턴 빼고, 北핵동결 카드 논의…美대북협상 접근법 바뀌나

판문점 남측 향하는 북미 정상. (사진=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동 이후 북미 실무급 회담이 이달 중순 쯤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간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해왔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보다 유연하게 변모할 조짐이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관측을 처음 제기한 곳은 미국 일간 뉴욕타임즈로, 해당 신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자 기사에서 몇 주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핵동결’을 첫걸음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미 대선 전까지 가시적인 대북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완전한 비핵화는 그때까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비핵화로 가는 중간 단계로 핵 생산을 동결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즈는 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내놓은 영변 핵시설에 더해 동결 대상 핵시설을 추가하도록 하고, 사찰단까지 수용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뉴욕타임즈에 “완전한 추측”이라고 반박하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다음날 트위터를 통해 “논의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뉴욕타임즈는 재차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기류 변화를 확인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뉴욕타임즈는 1일(현지시간)자 기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협상 접근법을 놓고 분열돼 있으며, 볼턴 보좌관과 의견을 달리하는 일부 고위 관리들은 점진적 접근법을 논의해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동결 카드를 받는 대신 미국이 북한의 생활 여건 개선을 지원하거나 북미관계 강화 등에서 일부 양보를 할 수 있다는 것. 

또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나 판문점 회동 등을 보면 볼턴 보좌관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회동에 동행하지 않고 몽골로 향했으며, 볼턴 보좌관 대신 터커 칼슨 폭스뉴스 앵커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이날 기고한 칼럼에서 “볼턴의 반발은 (핵동결이라는) 그 아이디어에 결정타를 먹인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아마도 핵심에서 배제됐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협상 총괄 책임을 맡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입장 변화도 눈에 띈다. 볼턴 보좌관과 달리 판문점 회동에 동행했던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완전한 비핵화나 핵 프로그램 목록 제출과 같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워싱턴포스트는 폼페이오 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협상상대방)였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실각한 점도 북미 실무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은 30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기자들과 짧은 문답을 통해 “(북한) 외무성이 우리의 협상 상대방이 될 것”이라고 말해, 북측 협상팀이 재편됐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 등과의 만남에서 속을 알 수 없고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며, (북한 협상팀의) 새로운 피가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고집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비핵화로 가는 중간 단계로 핵동결을 검토하는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북측의 협상팀도 새롭게 재편되면서 이달 중순쯤으로 예상되는 북미 실무급 회담에서 합의의 실마리가 마련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실무 협상을 주도하는 비건 대표가 여러 차례 강조한 대로, 회담이 성과를 내려면 북한 실무급 협상팀이 비핵화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비건 대표는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측과 벌인 실무협상에서 협상팀이 비핵화 안건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 협상이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뉴욕타임즈는 1일자 기사에서 일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어떤 접근법을 취하더라도 북미가 비핵화의 개념 정의에 합의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보도했다. 비핵화의 최종 단계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실무 협상도 진전될 수 있다는 것.

앞서 비건 대표는 지난해 1월 말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 강연에서 모든 핵물질과 핵무기, 관련 시설과 미사일 등에 대한 신고와 검증, 폐기가 끝나는 것이 완전한 비핵화라며 미국의 비핵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따라 북한 실무 협상대표가 비핵화 개념을 논의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갖고 오는지, 또 미국과 비핵화 개념에 대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지가 이번 실무급 회담의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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