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못지않은 정치갈등 보여준 트럼프 연두교서

연두교서 발표 직전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악수를 거절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극우 독설가 러시 림보에게 즉석 훈장수여
민주당 하원 의장은 연두교서 사본 찢어보여
탄핵 하루 앞두고 공화당 “4년 더” 외치기도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흰옷으로 저항 표현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말 끝 마다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민주당 소속 하원 의장은 연설이 끝나자 대통령의 연두교서 사본을 찢어보였다.

4일 밤(현지시간) 90분가량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할 거 같다.

민주당, 공화당 양당의 갈등이 골이 그 만큼 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였다.

트럼프는 반대 진영을 포용하거나 이해하거나 배려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반대 진영과의 입장 차이를 의도적으로 더 드러내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의 소개를 받고 연단에 서면서 펠로시 의장이 청한 악수의 손을 외면했다.

플로어의 공화당 의원들은 그의 재임을 바란다는 의미로 “4년 더(four more years)”를 연호했다.

연두교서의 백미는 갤러리에 앉아있던 극우 독설가이자 정치평론가인 러시 림보에 대한 훈장 수여식이었다.

연두교서 발표 중간에 트럼프는 최근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러시 림보를 깜짝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가 미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를 했다면서 러시 림보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멜라니 트럼프 영부인에게 자유 훈장을 수여해 주도록 유도했다.

멜라니 여사가 파란색의 훈장을 목에 달아주는 장면과 메달을 받고 감격하는 러시 림보의 얼굴이 이날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음은 물론이다.

러시 림보는 인종 차별에 여성 비하를 일삼으면서 진보진영 타도의 선봉에 섰던 논객으로 악명이 높아 많은 미국인들의 혐오의 대상이다.

이런 인물에게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즉석 훈장 수여식을 연출한 것이다.

트럼프는 연설에서도 지극히 당파적인 내용을 이어갔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뒤에서 연두교서 사본을 찢는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내세운 ‘메디케어 포 올(전국민 의료보험)’을 사회주의로 매도하거나, 미국내 반대가 심한 반이민 정책 강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이런 불편한 내용을 예상한 듯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트럼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여성평등과 결속을 보여주기 위해 흰 옷을 맞춰 입은 채 앉았다.

저항의 흰 옷 입기를 제안했던 낸시 펠로시 의장은 연두교서 내내 트럼프 뒤 의장석에 앉은 채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90분간의 일방적 연두교서가 끝나고 트럼프가 단상에 내려가려는 순간 낸시 펠로시 의장은 연두교서 사본을 갈기갈기 찢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TV 방송들은 이날 밤 연두교서 특집 방송을 보내면서 두 사람 간 냉랭한 갈등의 현장이라며 해당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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