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노’ 후폭풍 부나? 특종기자에 쏟아지는 융단폭격

미국 대통령선거를 불과 50여일 남겨두고 출간되면서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특종기자의 신간이 예상치 못하게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의 내용이 출간에 앞서 워싱턴포스트에 공개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우드워드 기자도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동료 언론인들의 비판이 거세다.

스펙테이터 유에스 워싱턴의 에디터 에임버 에이디는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 보도를 했었어야지, 책을 위해 묻혀 놓을 게 아니다”며 힐난했다.

존 오스트로어 에어커런트 편집장도 자신의 트위터에 “언론인으로 말한다. 이 책을 구매해선 안된다. 트럼프가 우드워드에게 말한 게 2월 7일이고, 미국의 첫 코로나 사망자는 2월 28일에 나왔다”고 썼다.

스콧 노바 기자도 “2~3월의 인터뷰를 왜 책이 출간되는 9월에 알아야 하는가”라며 “정말 문제가 있다. 우리 기자들은 공익에 복무하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에스콰이어의 찰스 피어스도 “트럼프 대통령과 우드워드 기자 모두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일갈했다.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전직 기자이자 언론학자인 데이비드 보드먼 템플대 교수도 “기자들이 중요한 뉴스를 책에 쓰려고 묵혀 두는 사례를 최근 자주 접한다”며 “생사가 걸린 상황에 이런 관행이 과연 윤리적인가”라고 따지고 있다.

보드먼 교수가 말한 사례란 뉴욕타임스의 마이클 슈미트 기자의 경우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슈미트 기자가 최근 펴낸 ‘도널드 트럼프 대(對) 미국’이라는 제목의 신간이다.

슈미트 기자는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11월 월터 리드 육군대학병원에 비밀리에 입원한 일화를 최초로 공개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마취가 필요한 시술을 받아야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대행할 수 있음을 백악관에서 통보하기까지 했다는 비화도 전했다.

현직 대통령의 건강 문제는 어느 나라나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곧바로 보도하지 않고 책 발간에 쓰기 위해 ‘저축해 놓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우드워드 기자 역시 자신의 책을 마케팅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베스트셀러 저자인 켐 피사니도 자신의 트위터에 “결국 우드워드는 2월에 사실을 알고도 7개월이나 기다렸다. 책을 팔기 위해서.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존 볼튼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비교한 것은 볼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건으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던 때에 침묵해 놓고 상황이 다 끝난 뒤에 논란이 된 ‘그 것이 일어난 방’이라는 책을 출간해 돈방석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우드워드 책에 대한 불매 운동 조짐도 보이고 있다.

물리학자 니콜 구글리우치 박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가짜 우드워드. 이 책을 사지 말라. 그에게 십원도 주지 말라. 그는 책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간동안 대통령의 녹음파일 위에 앉아 있었다”고 썼다.

(사진=워싱턴포스트 트위터 캡처)사실 우드워드 기자가 출간을 일주일 앞두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에 먼저 책 내용을 건넨 것도 마케팅 차원으로 이해된다.

언론에 책 내용이 소개돼 큰 논란을 일으키면 책은 대박을 난다는 공식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상술에 이용하기 위해 오랫동안 침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번 ‘격노’ 출간은 신문사와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우드워드 기자 개인적으로 진행했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주의는 침묵 속에서 숨을 거둔다’는 워싱턴포스트의 사훈마저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한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드워드 기자는 10일(현지시간) AP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이 정확한 것인지 확신을 갖는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만약 그 당시 보도를 했더라도 우리가 몰랐던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한편, 우드워드 기자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공화당의 닉슨 대선캠프가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한 사건을 특종 보도해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특종기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워터게이트 관련 어록까지도 이번 ‘격노’ 사건에 묘한 뒷맛을 남긴다.

“나의 임무는 그(닉슨)가 무엇을 알았고, 언제 알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