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폭동에 40년간 일군 한인 아메리칸 드림 물거품

미국에서 확산중인 흑인들의 소요사태 속에 한인 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과거 LA폭동 사건 당시 한인들이 입었던 손실이 아직 악몽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이번 소요사태로 인한 한인 피해가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주 최대 도시인 버밍햄시의 한인들에 따르면 이 도시에서 31일 발생한 폭력시위로 다운타운의 상징과도 같았던 한 대형 쇼핑몰이 불에 탔다.

흑인 밀집 도시라서 흑인들이 선호하는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류를 판매하던 이 쇼핑몰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한인 김모 대표.

버밍햄 한인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한 적이 있는 김 대표는 버밍햄의 대표적인 아메리칸 드림 개척자다.

그는 한인사회를 일군 1세대 이민자로, 지난 40년간 성공한 사업가로, 현지 미국인 커뮤니티에서도 신뢰가 컸던 기업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 일부가 야간 시위의 틈을 타서 쇼핑몰에 난입해 상품들을 약탈해 갔다고 한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약탈 후 누군가의 방화로 쇼핑몰이 입주한 2층 건물 가운데 1층이 전소됐다는 사실.

이 건물은 버밍햄시에서도 유서가 깊은 건물이라 유적지로 등재돼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의 사정을 누구 보다 잘 안다는 이영준 전 버밍햄한인회장은 김 대표의 상심이 여간 크지 않다고 전했다.

어려운 흑인들을 도와준 일도 많고 해서 설마 흑인들의 공격 대상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유리창 깨진 LA 한인타운 상점 (사진=연합뉴스)이 곳 뿐 아니라 워싱턴DC 인근에서 한인이 운영중이던 주류취급점도 30일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태의 진원지인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해 한인들이 밀집해 있는 LA, 애틀랜타 지역에서도 한인 피해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전역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시위에 언제 열리는지 정보를 교환하는 한편, 피해가 없도록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대비하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경우 ‘한인 안전대책본부 핫라인’을 구축하고 시위대의 동향을 파악하고 한인 업소들의 피해 구제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외교부는 이날 저녁 이태호 2차관 주재로 미국내 13개 공관 회의를 소집해 교민들의 피해 상황과 피해 최소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992년 LA폭동 당시 한인사회에 닥쳤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LA폭동은 이번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로드니 킹’이라는 이름의 흑인이 과속운전하다 도주하던 중 경찰관 4명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를 당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사건 이후 백인 배심원단의 무죄평결로 가해 경찰관들이 방면되자 분노한 흑인들이 시위에 나섰다가 유혈폭동으로까지 번져 사흘간 55명이 사망하고 2300여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이 사건과 무관한 한인들이 폭도들의 타깃이 되면서 전체 피해액 7억달러 중 절반 이상이 교민 사회에서 발생할 정도로 한인들의 피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