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품은 엔비디아…반도체업계 ‘지각 변동’ 이끄나

미국 엔비디아가 영국 ARM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과거 반도체 시장에서 단순한 그래픽 표시 업체였던 엔비디아의 달라진 위상도 재확인됐다. 올해 2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내며 시총에서 인텔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향후 엔비디아는 ARM이라는 날개를 달고 인공지능(AI),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에 더욱 적극적인 투자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 13일(현지 시간) ARM을 400억 달러(약 47조 5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다.

업계에선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을 품으면서 ‘반도체 공룡’이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신흥 강자가 또 다른 신흥 강자와 결합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만년 ‘도전자’가 아닌 챔피언에 등극할 날도 머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모바일 시대가 낳은 최대 수혜자 ARM

그렇다면 ARM은 어떤 회사인가. ARM은 한마디로 반도체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삼성전자, 퀄컴, 애플 등에 팔고 로열티를 받는 회사다.

ARM으로부터 설계도를 받는 기업들은 전세계 1000여곳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ARM 설계도를 활용해 만들어진 반도체가 230억개에 이를 정도다.

특히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고, 기존 강자인 인텔이 시장이 요구하는 솔루션을 단시간에 내놓지 못하자 ARM의 설계는 불티나게 팔려갔다. 모바일 생태계 최하단에서 ARM과 계약하면 일단 AP를 만들어볼 수 있었기 때문에 ARM은 산소와도 같은 존재였다.

여기다 ARM은 자사의 기술을 더해 스마트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칩을 만들고 AI 반도체도 설계한다.

현재 ARM은 인텔이 독점하던 반도체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서 컴퓨팅 기업들과 대화하며 하드웨어 설계를 하되, 때로는 컴퓨팅 회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도달했다.

다만 삼성, 퀄컴과 같이 AP 대부분을 스스로 설계하는 회사가 시장을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기 시작하면 ARM의 입지도 좁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손을 뻗은 것이다.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진출한 다크호스 엔비디아

(그래픽=연합뉴스)엔비디아는 GPU 분야의 선두 업체다. 물론 GPU 자체도 반도체로 이루어진 첨단기술이긴 하지만, 프로세스 자체가 프로그램 수행의 결과를 받아서 명령대로 움직이는 존재이지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GPU의 위상은 기존의 중앙처리장치(CPU) 성능 향상이 한계에 도달하고, 이로인해 대안으로 떠오른 기계학습 능력이 빛을 발하면서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GPU를 병렬로 배치해 연산처리 능력을 극대화한 ‘GPGPU’ 기술 보급 확대 이후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왔다.

특히 엔비디아는 기존의 광대한 PC 게이밍 시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슈퍼컴퓨팅, 서버, 자율주행자 등 수많은 분야에서 PC 게이밍을 능가하는 광대한 성장 시장을 차지했다.

다만 엔비디아의 새로운 상품들은 대부분 GPGPU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기존 GPGPU 근처에 ARM 프로세서를 결합해 제어능력을 부여한 것이 대부분이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소형 프로세서의 자체 설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 결합 정도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이번 인수로 GPU와 CPU를 모두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4차산업 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조건을 일단 갖춘 셈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닥칠 변화상은?

이번 거래가 현실화할 경우 엔비디아가 ARM의 설계 기술력을 흡수해 모바일 AP 생산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퀄컴 등 하이엔드 AP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반면 엔비디아가 모바일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재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TSMC와 삼성전자가 유일해 그만큼 수주 기회가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차세대 GPU 생산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밖에 엔비디아가 ARM과의 인수를 마무리 지은 뒤, ARM의 설계 기술 사용료를 기존에 비해 크게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반도체 생태계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