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알고도 종전선언?’ 여론 들끓자 靑 진땀 “일정상 수정못해”

서해안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격돼 시신이 훼손된 충격적 사건은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주장한 유엔총회 연설 발표 몇시간 전에 발생했다.

실종자가 총에 맞아 숨지고 북한이 시신을 불태운 시간은 22일 21시 30분~22시 11분 사이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약 4시간 뒤인 23일 새벽 1시45분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전세계에 발표됐다. 한반도 영구적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유엔총회 연설은 코로나19 여파로 생중계가 아니라 각국 정상들에게 사전에 녹화된 영상을 받아 뉴욕 유엔본부에서 순서대로 재생하는 형식이었다.

사전 녹화였다고 해도 명백히 시간상으로는 피격 사건이 발생하고 관련 첩보가 청와대에 들어온 뒤에 문 대통령의 연설이 발표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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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청와대가 피격 사건을 알고서도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발표를 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분위기 속에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연설과 피격사건을 연관짓지 말아달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연설문은 지난 15일에 녹화됐고 18일에 유엔으로 발송됐다”며 “이번 사건과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연계해주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연설 수정이 전혀 불가능 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관계자는 “그렇다. 이미 (연설이) 발송된 뒤로 이런 사안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사전녹화 형태로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라는게 청와대의 입장이지만 당시에도 소극적인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비판은 여전하다.

청와대에 따르면 실종자의 피격 관련 첩보는 이날 22시30분쯤 청와대에 접수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계부처 장관들은 이날 새벽 1시부터 청와대에 모여 긴급 회의를 개최했다. 장관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시각에 문 대통령의 연설은 수정되거나 취소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전세계에 발표됐다.

(사진=연합뉴스)게다가 청와대 참모들은 이날 당일 문 대통령에게 피격 관련 보고를 즉각 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민이 잔인하게 피격된 정황이 전날 청와대에 접수됐음에도 문 대통령에게 닿기 까지는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아울러 청와대는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문 대통령의 연설 기조가 여전히 유효하느냐는 질문에도 확답을 피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사고는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지속되고 견지돼야 하는 관계”라고 답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사고’라는 표현에 대해 해상추락사고를 가리킨 것이라며, ‘반인륜적 행위’라고 뒤늦게 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