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 잊은 ‘조선구마사’ 자업자득 대참사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SBS 퓨전 사극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제작사와 SBS는 재차 사과하고 대대적인 재정비를 하겠다며 시청자 달래기에 나섰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역사 왜곡 논란도 심각한데 중국 문화 동북공정 문제까지 얽힌 탓이다.

집필을 맡은 박계옥 작가가 보유한 이력 탓에 ‘조선구마사’ 사태는 다소 예견된 지점이 있다. 박 작가 전작인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도 방송 첫 주 만에 조선왕조실록, 종묘제례악 등 문화유산 비하와 실존 인물인 조대비(신정왕후)에 대한 저속한 묘사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조선구마사’와 ‘철인왕후’는 마치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다. 큰 장르 안에서 ‘판타지 퓨전 사극’으로 분류되고, 실존 인물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런 와중에 작품 연출·대사나 실존 인물을 재해석하는 방향을 두고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반응은 180도 달랐다. ‘철인왕후’는 제작사 측 사과와 함께 실제 성씨를 가상으로 수정하자 논란이 봉합되는 분위기였다.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해 17.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종영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불매를 주장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반대로 ‘조선구마사’는 제작 지원·광고가 끊기고 배우들까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치명타를 입었다. 이를 생각하면 ‘철인왕후’는 오히려 해당 논란이 ‘노이즈 마케팅’과 다름없는 남다른 성과로 이어진 꼴이다.

‘조선구마사’ 1회에서 구마 사제를 대접하는 자리에 등장한 중국식 음식들. 방송 캡처표면적인 성공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오점은 결국 더 심각한 위기로 돌아왔다. 박 작가 차기작 ‘조선구마사’ 또한 시청자들 고증 기준이 높지 않은 판타지 사극임에도 잇달아 문제가 터졌다.

중국식 음식·칼 등 소품 사용, 한푸(중국 전통의상)와 닮은 무녀의 복식과 머리모양, OST에 사용된 중국 악기 등은 우리 역사와 유산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중국 동북공정에 일조한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제작진은 극중 배경으로 나온 ‘의주 지역’이 명나라 국경 근방이라 중국식 소품을 사용했다고 설명했지만, 이 또한 여진족 등 유목 민족 영토와 인접한 국경지대였다는 데서 오류로 지목됐다. 부족한 해명은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명나라 영토가 아니었던 곳까지 중국 문화권으로 인정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동북공정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는 비판이었다.

태종과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 고려 최영 장군 등 실존 인물에 대한 묘사는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허구적 상상력을 더한 결과물이 실존 인물의 역사적 평가와 전체 맥락을 뒤집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간혹 역사 고증 문제를 두고 시청자들 반발이 있어도 모든 퓨전 사극이 이처럼 거센 논란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상상력 개입이 많은 퓨전 사극은 인물과 시대를 가상으로 구축하더라도 거대한 역사 줄기에 반하는 해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구마사’는 시작 전 시청자들에게 ‘본 드라마의 인물, 사건, 구체적인 시기 등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린다’고 고지한다.

환각에 휩싸여 백성을 도륙하는 ‘조선구마사’ 1회 속 태종 모습. 방송 캡처안타깝게도 이같은 모순된 글귀는 방패막이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미 ‘철인왕후’처럼 태종, 양녕대군, 충녕대군 등 실존 인물을 주요 캐릭터로 가져온 이상 ‘역사적 사실’과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끝내 실존 인물을 고집한다면 ‘상상력’은 제한되는 반면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은 이들 캐릭터와 관련한 역사적 평가·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변주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야만 했다.

어쩌면 제작진은 주어진 조건 아래 충분히 노력을 다했을 수도 있다. 중국발 문화 동북공정 탓에 ‘조선구마사’에 유독 가혹한 잣대가 적용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든 나쁘든 시대 흐름에 따른 시청자와 대중의 평가는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결과다. 결국 작가부터 연출까지 역사의 무게를 간과했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철인왕후’ 사태를 목격하고도 제작사와 SBS는 별다른 검수나 재편집 없이 방영 일정을 유지했다.

이제 와서 수습해 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양새다. 이미 시청자들 신뢰는 추락했고, 대대적 재정비가 아니라면, 동북공정에 일조한 역사 왜곡 드라마라는 꼬리표는 떼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박계옥 작가에게 ‘철인왕후’의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됐다. ‘그럼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은 ‘조선구마사’에 참사를 초래했다. 부디 이번에는 공식입장처럼 ‘엄중한 책임’을 다해 중국 동북공정 세력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까지도 떨쳐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