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왜 한국전쟁에 ‘마침표’ 찍지 않을까?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에 거주중인 동포들이 백악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68년간 지속돼 온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했다.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기념일을 사흘 앞두고서다.

이들 뿐 아니다.

‘7.27 한반도 종전 평화 국제행동’ 등은 이달부터 국내외에서 평화협정 체결 촉구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한국전쟁, 쉼포에서 마침표로!’라는 간명한 구호를 내걸고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유도중이다.

24일(현지시간) 오후 3시 백악관 앞에서 열린 평화협정 체결 촉구대회. 현수막에 '휴전에서 평화로'가 적혀있다.   사진=하이유에스코리아24일(현지시간) 오후 3시 백악관 앞에서 열린 평화협정 체결 촉구대회. 현수막에 ‘휴전에서 평화로’가 적혀있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이들의 요구는 미국 백악관에 맞춰져 있다. 더욱이 올해는 백악관 주인도 바뀐 상태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 같은 국내외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휴전협정 체결 기념일을 하루 앞둔 26일 그는 공허한 선언문만 내는데 그쳤다. 선언문에는 평화협정의 ‘ㅍ’자도 안 보인다.

그는 “1953년 3년간의 격렬한 전투와 수백만 명의 사상자 발생 끝에 미국과 중국, 북한의 대표들이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휴전협정은 전쟁포로 교환과 평화적 해결(peaceful settlement)을 위한 협상 기회를 가능케 했다. 거의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평화적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한반도는 38선을 따라 분단돼 있다”고 썼다.

평화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표현에서는 휴전협정 체결 당사자보다는 제3자의 입장마저 읽힌다.

그가 말한 ‘평화적 해결’이란 사실 휴전협정에 언급돼 있는 말이다.

휴전협정은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 까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등에서 무장행동을 중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담고있다

그러나 68년이 지나도록 ‘평화적 해결’, 즉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전쟁 당사국들은 그 동안 어떤 노력을 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2018년 4월 27일 남한과 북한의 군 통수권자들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국제법적으로 휴전협정의 우리측 체결 당사자인 미국이 움직이지 않은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 이전에라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을까?

한국전쟁과 전쟁 전후의 한미관계 역사에 정통한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전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가 주관한 ‘한반도 종전 캠페인 평화포럼’에 참석해 미국의 입장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1954년의 제네바 협정의 미국측 협상대표로 참여한 알렉스 존슨 전 주일대사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미국은 평화협정에 서명할 의사가 없었다”며 “미국은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났어야했을 때 그 전쟁을 끝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부르스 커밍스 전 시카고대 교수. 사진=유튜브부르스 커밍스 전 시카고대 교수. 사진=유튜브
미국의 입장은 워싱턴에서 활동중인 우리 외교 당국자들을 통해서도 교차 확인된다.

한 외교 당국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미국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 당국자는 아예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이유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그 동안 과거 수차례 도발을 벌여왔고, 지금은 핵무기까지 개발중인 준전시 상황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교가의 분석을 종합하면 미국은 현재 평화협정 체결을 북핵 해결의 조건 또는 지렛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원광대 이재봉 명예교수는 “남한에 핵무기가 있고, 북한에 핵무기가 없었을 때에도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했다”며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 저지용이라기보다는 중국 견제용 성격이 짙다”며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은 중국을 견제하는데 큰 구멍을 내는 셈인 만큼 미국으로서는 반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평화협정 체결시 폐기돼야 하는 휴전협정의 마지막 조문은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언급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방안이 제시돼 있다.

‘3개월 내에 고위급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 모든 외국군대 철수 등을 협의할 것을 상부에 건의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휴전협정 68주년 선언문도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국군과 함께 훈련하고 있는 주한미군들은 그들에 앞서 복무한 군인들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지키면서 감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파트너십은 오늘날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세계의 중요한 지역에서 경제 성장을 확대하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평화협정에 대한 입장은 미국 행정부 뿐 아니라 미국 의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한국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도록 국무부의 역할 등을 규정한 ‘한반도 평화법안’이 제출돼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20일 발의된 이 법안에 서명한 하원 의원은 전체 435명 가운데 이 날 현재 11명밖에는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