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쩌다 75센트 짜리 마스크에 체면 구겼을까

코로나19 사태를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필수적인 장비 가운데 하나인 '마스크'를 미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이러다보니 마스크를 '비싼 돈'을 주고라도 대신 구입해주는 것이 이웃에 대한 대단한 배려로 여겨진다. 한국의 지인들로부터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마스크를 항공편으로라도 보내줄까'라는 안부인사다. 어느 동네 무슨 가게에 가니까 마스크가 비치돼 있더라는 입소문은 코로나 국면에서 가장 영양가 있는 정보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75센트였던 마스크가 8달러 47센트에 판매되고 있다. 25일(미국시간) 환율로 10,410원이다. 이쯤되면 백악관 브리핑 때 "바가지요금을 용납하지 않겠다"던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도 울고 갈 일이다. 북한 미사일은 잡으면서 마스크는 잡지 못하는 미국,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바로 이 질문을 몇 날 째 파봤다는 언론인이 있다. 뉴욕타임스 파라드 만쥬 칼럼니스트다. 그가 이날 올린 칼럼의 제목은 '세계 최대 부자 나라는 어떻게 해서 75센트짜리 마스크가 동났을까'이다. 그가 이 질문에 집착했던 것은 마스크의 부족이 팬데믹에 대한 미국의 불합리한 대응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게는 한국의 검사 일변도의 좋은 전략도, 이탈리아에게 대재앙을 면치 못하게 했던 산소호흡기와 병상 부족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값싼 마스크와 고글, 장갑, 가운 등 기초적인 장비들만 있다면 의료진들이 안전하게 코로나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75센트 짜리 마스크가 없다는 건 자본주의 왕국 미국에게 대단한 체면 손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판매중인 N95마스크. 영수증에 8.47달러가 찍혀있다.(사진=권민철 특파원) 우선 그가 찾은 미국 마스크 부족 사태의 원인은 미국 자본주의의 병리학과 관련이 있다. 그는 비용이 저렴한 해외 제조의 유혹을 미국이 떨치지 못했고, 인센티브나 비용절감에만 집착했을 때 올 수 있는 연쇄적 취약성에 대한 대비도 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지금 전세계 마스크의 80%를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려고 해도 3~4개월은 소요될 뿐 만 아니라 대통령도 기업들로 하여금 물자와 장비 생산에 박차를 가하도록 독려하지도 않고 있다. 마스크 생산과 무관한 의류 제조업체들이 마스크 생산을 하겠다고 해도 안전기준을 충족시킨 제품을 만들어 낼지도 불확실하다. 이런 생산 및 공급 체계의 붕괴에 대비한 비축 계획도 고장 났다. 당초에는 2005년 조지 부시 행정부 때 유행성 독감 등에 대비해 1억 4400만개의 N95마스크와 5200만개의 수술용 마스크를 창고에 쌓아뒀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H1N1 독감 유행 때 1억개의 마스크가 분출된 이후 곳간은 끝내 메워지지 않았다. 이번달 현재 미국의 국가비축 마스크는 4천만개 뿐이었다. 회복력 보다는 효율성을 더 따지는 병원들도 재고 관리 문제 때문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보관할 일이 없다. 결국 일이 터졌을 때는 늦었다. 이미 1월부터 중국이 자국의 코로나사태에 대비해 마스크의 수출을 줄였다. 대만, 독일, 프랑스, 인도도 마찬가지 이유로 수출을 중단했다. 미국은 자국에서 벌어진 이번 마스크 대란을 보면서 기초적인 의료보호 장비 확보 같은 국가 보건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쥬는 칼럼 말미에 "충분한 보호 장비를 확보하는 것은 대유행을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가장 효과적인 일들 중 하나"라며 "우리가 그런 명백한 일에 실패했다는 것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국가적 무능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75센트 마스크가 1만원에 팔리기까지
마스크사태로 본 美 자본주의 병리학